예수(5): 무조건 기다려야 합니다 

6:35-52

 


어릴 때 스커스단의 단골 메뉴는 마술이었습니다. 기술들이 많이 소개 되긴 했지만 여전히 마술의 인기는 식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만약 예수님 제자였다면 참 재미 있었을 것 같습니다. 거의 매일 마술 같은 기적들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마가는 6장에서 너무나 놀라운 기적을 두 개나 소개합니다.

 

물 위를 걷는 예수님 이야기 앞에 오병이어 기적이 나옵니다. 이 두 기적은 시간상으로 이어서 일어납니다. 35절에 의하면 날이 저물 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명 이상을 먹이는 기적이 시작됩니다. 마무리 될 쯤에 주님은 급히 서두릅니다(45). 어두워지자 안전하게 집으로 보내기 위한 배려인 듯합니다.

 

심지어 주님은 직접 무리를 보낼 테니 제자들은 빨리 건너 가라고 재촉합니다. 직접 서두르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제자들을 먼저 배타고 건너편으로 가라고 말하시는 것은 이해가 안됩니다. 왜냐하면 만약 배가 하나라면 누가 또 와서 주님을 태워 가겠습니까? 가라 하지만 기다리라는 말로 저에게는 들려옵니다.

 

주님도 같이 가자고 말해야 하고, 제자들도 함께 가는 것이 정상인데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다리라는 주님의 의도가 맞다는 것이 또 장면에서 나타납니다. 힘들어 하는 제자들에게 가까이 와서 배에 오르자 풍랑이 멈춥니다. 그런데 그것이 주님이 일으키는 기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바람이 멈추는 시간과 일치합니다.

 

왜나면 주님은 바람아 잠잠할지어다라는 말을 전혀 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더 의문스러운 것은 왜 주님이 바다 위를 걸어오셔서 제자들을 보고(48) 그냥 지나가려 했느냐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보고 도우려 오신 분이 그냥 지나가려고 했다 이것이 이해가 됩니까?

 

답을 말하면 바람이 멈추는 시간에 오셨기 때문에 주님이 그냥 지나가도 파도는 자연스럽게 멈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뭔가를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싶어한다는 것이 확실해 집니다. 지난 주 마가복음 5장에서는 주님이 배에 함께 있어도 풍랑이 일어났는데 배에 탄다고 파도가 멈추겠습니까?

 

주님이 바다 위를 걸어올 때도 풍랑은 있었습니다. 풍랑을 멈추게 하는 기적을 보이려고 했다면 한 마디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침묵하십니다. 뭔가 가르치고 계십니다. 바닷가에서 주님 오시는 것 기다렸더라면, 폭풍 다 지나고 훨씬 편안히 더 빨리 도착했을 것이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생각나게 만드십니다.

 

결국 주님이 제자들에게 먼저 가라고 말은 했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됩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을 듣고 바닷가에 도착하지만 주님이 타고 올 배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실 배가 없는 것이 맞습니다. 6:22에는 배가 한 척 뿐이었는데 그 배를 예수님이 안타고 가셨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쯤 되면 제자들 머리 속에 몇 시간 전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바닷가에서 주님 혼자 두고 가는 것이 좀 찝찝하다고 서로 논쟁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주님이 건너가라고 말했지 않느냐? 게다가 다른 배를 빌러 타고 오실 수 있어. 그래서 먼저 가라고 했어.” 제자들 나름대로 합의를 보고 난 뒤 떠났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뭔가 항상 변명할 여지를 확보해 두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파도로 고생만 하며 앞으로 나아가지 말고 주님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고 누군가 제안했는지도 모릅니다. 돌아가서 혼자 배도 없이 기다리는 주님 모시고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14:24은 수리나 떠나, 6:19절에는 십여리(4km)라고 말합니다. 제자들은 되돌아 가는 것 보다 계속 나아가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했기에(고집/아집) 계속 나아 가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도 배가 움직여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찌되었건 결과적으로 주님 없이 무엇을 시작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을 제자들은 확실히 알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것이 주님이 가르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마찬가지로 주님 오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풍랑 없는 삶이며 고난의 시간을 줄이는 지혜입니다.

 

정말 그런지 한번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병이어 기적이 시작되는 시간을 보면 35절에 날이 어두워질 때라고 말합니다. 아마 일몰(6) 1시간 전인 오후 5시 정도 시작하였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먹을 것이 없다는 상황 보고를 하고 처리방안을 의논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한 아이가 오병이어를 가지고 옵니다.

 

사람들을 앉히고, 주님이 축사하고, 나누어 주고, 먹는 시간, 먹고 난 뒤 거둬 들이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대충 두 시간은 걸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대충 저녁 7시 정도에 완료 되었을 것입니다. 그 후 바닷가로 걸어오는 시간과 와서도 주님 탈 배가 없다는 논쟁을 하는 시간을 감안하면 1시간 정도 소요될 것입니다.

 

그러면 실제 배를 타고 출발한 시간은 8시 정도일 것입니다. 그리고48절에 주님이 제자의 배에 도착한 시간이 사경(4, 현대)이라면 8시간 정도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만약 바닷가에서 오지 않는 주님을 1시간만 더 기다리다 9시 정도에 출발하면 고통의 시간은 1시간 줄어 7시간 정도일 것입니다.

 

사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바다에서 고생하는 시간이 줄어 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성도는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 기다리다 잠이 들어 자다가 떠났다면 고난의 시간은 훨씬 더 줄었을 것입니다. “겨우 몇 시간 차이인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죽을 것 같은 상황에 1초의 기분을 아시는지요?

 

주님 없이 혼자 가다 폭풍 만나고 주님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인내하며 기다렸다, 주님과 동행하여 가다가, 폭풍이 일어나면, 도움 요청하여 평안이 가는 인생, 어느 것이 좋을까요? 오늘 결론을 단순히 우리가 고생하는 것 보고 주님은 물 위라도 걸어서 오십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돕기 위해 물위를 걸어 주님이 오기도 하지만, 걸어 오실 때는 우리도 물 위에서 엄청나게 고생하는 시간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성도라면 험한 바다 같은 인생 살 때, 주님 없이 성급하게 먼저 출발하지 말기 바랍니다. 기다리기 바랍니다. 주님 오시면 함께 건너기 바랍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기다림을 배우도록 일부러 산으로 기도하려 올라 갔습니다. 우리에게 기다림은 기도입니다. 주님 오심은 기도의 응답입니다. 그러므로 기도 가운데 기다림은 폭풍에서 고난의 시간을 줄여 줍니다. 주님 주시는 응답 기다렸다 힘든 풍랑 만나지 않고 가는 인생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