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2): 주께 나아 오는 자   

1:40-45; 10:1-2, 9-10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누리는 특권 하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와서 요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새해에는더욱 주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한 나병환자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 직접 나아와 치유를 원합니다(40). 그의 치유를 보고 더 많은 무리가 자신들의 요구를 위해 직접 주님께 나아왔다고 합니다(45).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기도 하지만 반드시 하나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거룩의 문제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인간은 거룩을 상실할 경우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했고 죽기도 했습니다. 예가 레10:1-2절에서.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제사하러 회막에 들어가 죽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면 제사에는 번제단 불을(16:12-13)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침 그때 번제단 불이 꺼진 사실을 알고 쉽게 다른 불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매우 융통성 있는 행동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행위는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거룩이 무엇인가를 보게 됩니다. 거룩은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인간이 어떻게 대하는가를 말해주는 척도입니다. 게다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을 상실하는 것이 죄가 되는 이유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과 연관 되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나아가서 이 사건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어쩌다가 이 두 형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요? 제사장 직을 받을 때 철저하게 모세로부터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잘 훈련 받아 이행하는 모습이 바로 레 8-9장에서 보여집니다. 결국 레10장은 훈련이 부족한 가운데 그 사건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거룩을 잘 지켜 나가던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과연 이 두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실수는 어디로부터 왔을까요? 특별한 원인을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유일한 단서를 찾는다면 이 사건이 일어나 직후 하나님이 아론에게 직접 말씀하는 레10:9절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를 발견합니다. “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먼저 독주를 마셔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식적으로도 수긍이 갑니다. 독주는 세상 사람들도 건강상 안 마시는 것이 좋다고 동의합니다.

 

또한 신을 섬기는 자리에 독주를 마시고 들어가는 것은 예의가 아닌 듯합니다. 진짜 문제는 포도주인 것 같습니다(1). 회막에 들어 갈 때 포도주까지도 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포도주가 당시 고대 근동지역에 음료로 사용된 것인데 그것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찬식에도 마시는데 이것을 어떻게 오늘날 성도들이 해석할 수 있을까요? 조금 상세히 레위기 말씀을 살핀 분들은 하나님이 아론의 자손인 대제사장들에게 명령한 것이지 일반인들에게 명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2). 그리고 회막도 사라 진지 오래인데 뭐가 문제냐고 말합니다(3).

 

광야생활 중에 회막은 공동체 중심에 위치하며 하나님을 만났던 장소입니다. 회막은 나중 성전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고전 3:16에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 자신을 성전이라고 부르며 그곳에 늘 성령이 거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성령이 거하는 장소에 독주()가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베드로 사도는 구약의 용어로 오늘날 성도의 정체성을 선포합니다. 벧전2:9절에서 오직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성도는 구약의 제사장과 같이 거룩을 지켜야 하며 일대일로 여전히 만나는 관계라는 사실입니다.


그래도 질문이 남습니다. 술은 그렇다 해도 성찬에서 포도주는 어떤가요? 근본적으로 사용 목적이 다릅니다. 성찬의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포도주와 그때 마시는 양과 자신의 기분을 위해 마시는 포도주는 전혀 다른 차원인 것입니다. 게다가 마시는 양에 절제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다시 한번 더 레 10:9절을 보기 바랍니다. 순서가 독주와 포도주가 아니라 포도주와 독주(:공동)로 되어 있습니다. 두 아들이 행한 행위에 대해 심판을 하신 하나님은 본 것을 그대로 기록했다고 봅니다. 거룩을 어느 누구보다 더 중요하게 유지해야 할 제사장들이 그것을 잊을 정도로 술에 취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도 양심이 있어 처음부터 독한 술에 먼저 취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순서가 독주가 아닌 와인(영어 번역들)에서부터 시작했음을 본 절이 암시해 주는 것입니다. 이어서 레10:10에서 제사장과 같은 성도가 술 취하지 말아야 이유는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바울 역시 성령 충만을 방해하는 것이 술 취함에 있다고 동의합니다(5:18). 판단을 무디게 만들어 거룩을 유지하게 하는 능력이 되는 성령을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판단은 모든 일의 시작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여기서 무너지면 모든 것이 실패할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입니다.

 

많은 시간을 술에 대해 나누었지만,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을 방해하는 죄들이 어찌 술뿐이겠습니까? 오늘 이 시간 어떤 죄라도 발견되면 자백하기만 하면 미쁘시고 의로우사 모든 불의에서 깨끗게 하시는(요일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서 죄사함 받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