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4): 안나의 성탄 

2:36-39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날을 축하하는 성탄주일입니다. 가정과 개인에 주님의 놀라운 평강이 임하길 축복합니다. 몇 주 동안 주님을 처음으로 맞이한 사람들을 살펴 오고 있습니다. 첫 인물로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배속에 있는 아기 예수를 만났을 때 성령 충만함을 받는 성탄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걱정과 염려 속에서 자신을 찾아온 마리아를 축복하고 격려하게 됩니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한 마리아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주의 위대한 일에 자신이 쓰임 받고 있음을 확신하며 소명감으로 성탄을 맞이했습니다.

 

다음 인물은 죽기 전에 메시야를 볼 것이라는 약속을 붙잡았던 시므온의 성탄입니다. 거의 죽을 날이 다가와서야 그가 평생 사모하고 기다려 오던 메시야를 성전에서 보게 됩니다. 비록 어린 아이에 불과하지만 장차 이스라엘과 이방에 베풀 구원을 바라보며 위로 받는 성탄을 맞이하였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시간으로 안나의 성탄입니다. 그녀 역시 시므온과 같이 죽기 전에 메시야를 성전에서 만나는 축복을 받습니다. 선지자로서 살아온 그녀는 아기 예수를 안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 아이가 세상을 구원하실 구원자 되심을 많은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성탄을 맞이하게 됩니다(38).

 

평생 메시야를 기다렸던 시므온은 죽기 전에 어느 날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으로 들어가라는 지시를 받고 아기 예수를 만납니다. 그러나 안나는 성전에서 거의 평생을 살면서 어느 날 아기 예수를 만나는 차이가 있습니다. 누가는 특별히 안나에 대해 시므온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주고 있습니다.

 

36절에 의하면 그녀는 아셀 지파이며, 아버지는 바누엘이라고 소개합니다. 안나에 대해 이 정도로 알고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선지자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록 누가는 선지자로서 그녀의 활동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상당히 알려진 인물임을 암시해 줍니다.   

 

안나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여자 선지자라는 특수성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가지고 있는 슬픈 사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전을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소문이 나고 그녀를 기억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갔지만 겨우 칠 년 동안 살다 남편이 죽게 됩니다.  

 

그때부터 한 여인의 힘든 삶이 시작 되게 됩니다. 게다가 자녀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 룻기를 보면 다른 며느리들은 친정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아니면 형제나 가까운 친척의 아내가 되어 가문을 이어가게(25:5) 되지만 이것조차도 안 되는 형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편, 그녀가 속한 아셀지파는 지중해 해안 지역으로 농사짓기에 좋은 땅을 가지고 있어 왕의 수라상을 준비할 만큼 풍성함을 가진 지파로 야곱은 축복합니다(49:20; 19:24-31). 남편을 잃어도 이런 삶이 보장된 자신의 지파로 돌아가면 될텐데 안나는 힘든 삶이 기다리는 성전에 남아 평생 살게 됩니다.

 

왜 그랬을까? 한 번 생각 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같은 지파의 남자에게 시집 온 경우라면, 남편이 죽자 성전이 있는 유다 예루살렘으로 이주해 왔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아니면 유다 지파의 한 남자에게 시집을 왔다가 남편이 죽자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유다에 남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복잡한 이유들은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남편이 죽자 성전에 머무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특이한 한 가지를 발견합니다. 보통 이런 처지의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은 하나님을 원망하며 교회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데 이 여인은 오히려 성전을 택하게 됩니다.

 

그녀가 성전에 거하게 된 이유는 남편을 잃고 나실인으로서 삶을 드렸을 가능성입니다. 예를 들면, 엘리제사장의 때부터 성막을 섬기는 여인들이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삼상 2:22). 그리고 나실인은 자신이 정하는 기간만큼 섬길 수 있었다면(6:4), 안나는 평생을 헌신 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평생 성전에 거하는 그녀의 모습이 37절에서 소개 됩니다. 물론 성전 일을 도왔겠지요. 그러나 그녀의 대부분 평생 성전생활은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는 삶이었습니다. “주야로 금식하며라는 말을 현실적으로 삶이 보장된 제사장이 아닌 선지자의 어려운 경제적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더욱 하나님께 메달리며 기도하는 경건의 삶을 선택하게 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안나는 하나님께로 멀어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그때 하나님을 더욱 의지합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며 신혼생활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도 얼마 가지 않아 남편을 잃게 되었습니다.

 

당시 대부분 13세 이후에 시집을 갔다면 칠 년 후면 정말 집 짓고 자식 낳아 행복한 삶을 살아갈 시간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혼자가 됩니다. 정말 눈물만 앞을 가리는 캄캄한 날들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망스럽습니다. 왜 자신에게 이런 불행한 일이 생기는지 따진 날도 하루 이틀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침묵합니다. 자신을 처다 보는 사람들의 눈길도 곱지는 않습니다. “남편 죽인 여자다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자식이라도 있다면 그렇게까지 슬프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이들 바라보며 크는 즐거움도 없었습니다. 남들보다 더 원망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선택합니다. 도망가거나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더 나아가는 기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39절을 보면, 안나가 성전에서 하는 일은 아이를 낳고 결례를 지키려 오는 가정들을 도와 주었던 일을 한 것으로 추정 됩니다. 아이들을 안고 함께 감사하며 즐거워했습니다.

 

또 성전에서 이스라엘의 속량을 기다리는 경건한 사람들도 만났을 것입니다(나다나엘, 요1:48). 그들과 함께 이미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에 대해 함께 말씀을 나누다 보니 그녀에게 선지자라는 타이틀이 자연스럽게 주어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이 시므온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시므온이 성전에서 먼저 아기 예수를 보고 메시야임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안나는 선지자로서 그의 말에 대해 맞다는 확신을 주는 증인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두 사람이 법적 증인이 되어 메시야가 세상에 온 것을 선포하게 됩니다. 그래서 누가는 안나가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말했다고 38절에 기록하는 이유입니다.

 

안나의 성탄은 주님이 이 땅에 구원자로 오셨음을 확정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합니다.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주님을 세상에 선포함으로 법정 증인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녀는 세상을 선택하지 않고 성전에 머물기를 원하며 죄를 멀리하는 청결한 삶을 선택한 사람이었습니다.

 

주야로 금식하고 기도하며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었습니다(5:8), 그런 그녀에게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를 보는 영광을 얻게 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이천 년 전에 주님이 오신 것을 이미 보았기에 이제는 세상을 구원하실 분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는 성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