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3): 시므온의 성탄 

2:25-35

 


오늘도 성탄을 맞이했던 특별한 한 사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본 엘리사벳, 마리아는 모두 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인공은 남성입니다. 25절을 보면 예루살렘에 살았고 그의 이름은 시므온입니다. 그에 대한 다른 것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합니다.

 

기다리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26절에 의하면 메시야입니다. 그러므로 시므온의 성탄은 기다림이었습니다. 어느날 메시야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할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습니다. 게다가 29절에 주님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라는 말씀을 보면 상당한 나이가 되었음을 알려줍니다.  

 

무엇이 시므온으로 하여금 평생 메시야를 기다리게 만들었을까요? 25절은 세 가지를 답으로 제시합니다.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소개합니다. 먼저 그의 의가 긴 기다림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성경의 는 착한 행위나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얻어진 의를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에 이를 수 있습니다(15:6, 5:1). 그러므로 시므온이 의롭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뜻이고 본문에서는 성령이 지시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는 뜻입니다. 결국 시므온이 긴 시간을 기다릴 수 있었던 힘은 자신이 죽기 전에 반드시 메시야를 볼 수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또한 긴 시간 동안 메시야를 기다릴 수 있게 만든 것은 그의 경건입니다. 경건은 우리의 믿음이 겉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경건을 헌신(devout)으로 번역합니다. ‘헌신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말하는지 본문은 잘 설명하지 않습니다. 막연히 우리는 교회에서 많은 것을 잘 섬기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7절에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라는 표현이 헌신의 의미를 우리에게 잘 설명해 줍니다. 헌신은 성령의 감동이 밀려 올 때 말씀하시는 바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주의 일을 성령의 감동 없이 자신의 생각만으로 하는 것이나,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은 헌신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직무를 맡길 때 기도하게 하는 이유입니다. 맡기는 사람도 사람이 시키는 일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맡은 사람이 기도하고 성령의 감동으로 시작하기를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섬겨 달라는 요청이 올 때 기도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 직책을 맡을 때 헌신이 되는 것입니다.

 

내년 서리 집사 임명을 위해 12월에 본인이 서리집사로 임명 받을 것을 서약하는 서약서를 곧 받게 될 것입니다. 그분들에 한해서 내년에 제직세미나를 통해 교육을 받고 임명하려고 합니다. 기도 가운데 감동으로 즐겁게 그 사역들을 감당하는 제직들이 내년에 세워질 줄 믿습니다.

 

끝으로 긴 기다림을 가능했던 것은 위로 받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므온 개인의 위로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위로라고 말합니다. 개인적 차원을 넘어 온 민족의 위로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기 전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도 힘든 시기였지만 삼사백 년 동안 말씀을 받지 못하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를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 또는 암흑기로 불립니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씀 드리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끊어진 시간이라 보면 맞습니다. 관계가 끊어진 사람은 대화가 없습니다. 그 많은 선지자들의 입에 하나님은 말씀을 넣어 주지 않았습니다. 너무나도 이스라엘은 제 마음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약속의 말씀이 없으면 위로가 없습니다. 성도님들은 요즘 어떤 말씀을 개인적으로 받고 사시는지요? 주일 날 읽는 성경구절로만 살아가는 분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지난 주 설교구절도 기억나지 않는 바쁜 현실에서 각자 말씀을 읽는 시간을 내어야만 위로 받을 수 있습니다.

 

가을 학기 동안 해 오던 북스터디나, 각종 성경공부, 목장에서 만나 서로 말씀을 나누던 모임들이 방학을 맞았습니다. 이제 성도님들은 배우는 것을 조금 내려 놓으시고 말씀 그 자체를 다시 손에 들기 바랍니다. 순수한 말씀만으로 나를 채우는 시간을 개인적으로 가지기를 바랍니다.

 

코넬한인교회는 성도님들께 연중 성경 일독을 권장합니다. 다듬어지고 해석된 설교와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성경공부도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를 그대로 접해야 성도는 힘있게 살 수 있고 위로를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말씀이 어떻게 우리를 위로하는지 잠깐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성경공부나 나눔을 통해 자신들의 이해와 해석들을 마구 집어 넣었던 것들 중에 잘못 된 것들이 소멸 되어야 위로가 일어납니다. 말씀과 어긋난 것들이 사라지지 않으면 사람과의 관계를 힘들고 하고 주님께 순종을 어렵게 만들므로 위로가 아니라 혼란이 생깁니다. 그래서 말씀 그 자체를 읽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도님들은 어떤 성탄을 기다리고 있는지요? 시므온은 메시야가 장차 오셔서 베풀 이스라엘에게 베풀 위로를 기다렸습니다. 우리는 이미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이방인들에게도 베풀 위로를 기다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우리에게 베풀 위로를 기다리는 성탄이 되어야 합니다.

 

그 위로는 로마로부터의 정치적인 해방도 아니고, 배고픔으로부터 주어지는 빵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망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멸망의 마지막 심판으로 건지신 위대한 구원임을 시므온은 30절에서 결론짓고 있습니다.

 

성도는 세상으로부터의 문제에 대한 해결만을 위로라고 한정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신통한 점쟁이도, 능력 있는 도사도, 인간이 세운 지도자도, 심지어 스스로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경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허락된 더 크고 복된 위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위로는 내 영혼이 죄로 인해 보지 못했던 빛이(32) 있어야 합니다. 그 빛은 35절에서 내 마음의 악한 생각을 드러내서 회개하게 하는 주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죄가 주님의 보혈에 의해 용서 받았다는 선포가 가장 큰 성탄의 위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