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2): 마리아의 성탄 

1:45-55

 

하나님의 아들을 땅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 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마리아의 성탄입니다. 누가는 마리아 찬가(Magnificat 메그니피카트)로 알려진 본문을 통해 그녀가 어떤 성탄을 맞이했는지를 우리에게 잘 들려 주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성탄은 45절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천사로부터 수태고지를 받은 마리아는 당혹감을 이기지 못하고 천사가 일러 준 친척 마리아를 방문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성령충만함을 받은 엘리사벳으로부터 마리아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의 의미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고 축복의 말씀을 듣자 믿음이 생깁니다(45).

 

이 믿음이 마리아에게 생기자 마리아는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입술에 찬양이 생기며 마음에 기쁨으로 충만해 집니다(46-47). 이 기쁨의 출처는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하나님이 행하는 것이기에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라도 복된 것이라는 확신(믿음)을 가졌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연말을 보내면서 이런 믿음을 먼저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올해 일어났더라도 하나님이 모든 것을 관여하시고 나와 이 일 가운데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떤 두려움과 걱정과 염려를 마리아처럼 떨쳐 버리고 기쁨으로 성탄을 맞이할 줄 믿습니다.

 

넘치는 기쁨과 그녀의 찬양은 놀랍게도 마리아의 내면적 상처를 치유합니다. 당시 마리아는 정말 흔한 여자 아이들의 이름입니다. 복음서에 많은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들이 그것을 증명해 줍니다. 또한 여인들은 수를 헤아릴 때도 늘 아이들과 함께 제외됨으로 낮은 존재감을 알게 합니다.

 

마리아의 출신도 낮은 자존감에 한 몫하게 됩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불릴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시골 출신입니다. 이런 비천한 신분의 자신을 선택하심에 대해 마리아는 너무 감격하며 찬양으로 나아갑니다. 기쁨으로 맞이한 첫 성탄은 낮은 자존감을 극복하는 선물을 받게 됩니다(48).

 

알아주지 않는 직업을 가진 남자와 결혼하는 것도 문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메시아를 잉태하는 놀라운 은혜를 입게 하심에 감격합니다. 세상에 이름만 나도 칭송을 받는데 자신으로 하여금 메시야를 잉태한 엄청난 주인공이 되게 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찬송했던 것입니다.    

 

결국 낮은 자존감의 극복은 나를 하나님이 사용한다는 소명으로 더욱 나아갑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불러 사용해도 고마운데 만물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 나를 불러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도구가 되게 한 것은 너무나 기쁜 일입니다. 이 소명이 어린 마리아의 심령을 사로 잡았던 것입니다.

 

이천 년이 지난 우리들 역시 동일해야 합니다. 2018년 성탄을 맞이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그곳으로 나를 부르셨다는 소명감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소명이 성도에게 있을 때 마리아처럼 감격하고 찬양을 올려 드릴 수 있습니다.

 

성도의 직업관은 남의 일을 하는 노동자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으로 불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도에게 주신 삶의 현장은 구원을 선포하는 장소이며, 세상으로 구원을 누리게 만들 책임을 부여 받은 장소입니다. 이 소명감을 회복하는 성탄이 되길 바랍니다.  

 

소명감을 회복할 때 자신을 돕는 능하신 하나님이 보이게 됩니다(49절상). 아이를 갖지 못했던 엘리사벳이 임신하고, 처녀인 자신에게도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는 엄청난 일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앞으로 맞이할 성탄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실제 체험할 줄 믿습니다. 

 

앞길이 막혀 있는 분들에게 길이 만들어질 줄 믿습니다. 아프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분들에게 주님의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함께 하기를 믿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나를 돕는 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그 확신을 주기 위해 49()에서 하나님은 그 이름이 거룩하다고 하십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에게는 거짓이 없다는 뜻입니다. 거짓이 없기에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모든 것이 사실로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나에게도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 바랍니다. 긍휼은 하나님의 복을 가져오는 아버지의 선물입니다.  


50절을 보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대대로 긍휼을 주신다고 약속합니다.

긍휼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있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어야(경외)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마리아는 상세히 설명합니다.

 

먼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51절에서는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의 팔에 의해 흩으심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팔을 이길 수가 있습니까? 되돌릴 수 없는 벌이 주어진다는 의미입니다.

 

흩으심의 대표적인 모습이 바로 바벨탑 사건입니다. 그들은 세상으로 흩어져 하나님 통치를 이루는 나라를 건설하기 보다는 자신들을 위해 흩어짐을 막자라고 외칩니다. 하나님 뜻을 위해 일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마음이 원하는 것에 더 집중하는 모습들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세상에서 권세를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52). 그렇다면 성도는 세상에서 권력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그런 의미입니까? 아닙니다.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세상 힘을 자신의 이름을 내는 것에 사용하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자기 의를 위해 쌓은 바벨탑은 하나님이 무너뜨려 버립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자신의 지위를 낮추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마음과 자세를 낮추는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가 이런 겸손과 섬김을 회복해야 하는 이유를 53절에서 주어집니다. 주리는 자를 배부르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정신적 물질적 육체적 영적으로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이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마리아와 같은 성탄을 맞이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면 무조건 옳다는 믿음으로 출발하여 기쁨과 찬양이 넘쳐나서 우리들의 깊은 내면의 상처들이 치유받고, 이 땅에서 복을 누릴 삶의 현장에서 소명감을 가지고 겸손하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여 긍휼함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