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2): 교제 공동체 

2:42


 

사도행전 속에서 보여주는 교회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그 다이나믹한 얼굴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공동체입니다. 지난 주에는 배움의 공동체를 바라보았습니다. 배움을 통해 성도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배움이 없이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제대로 세울 수 없습니다.

 

지난 주에 다루었던 배움의 주제에 이어 오늘 본문에서 발견되는 것은 교제라는 단어입니다. 너무 성도님들이 많이 들어온 단어입니다. Fellowship(NIV, KJV, NASB) 또는 코이노니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친교라는 용어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글 번역에서 교제를 살펴 보니 의외로 번역들이 다양했습니다. 개역개정과 현대인의 성경은 교제, 공동번역은 서로 도와주며그리고 새번역은 서로 사귀는 일로 번역합니다. 그렇다면 교제는 도와주는 것이(구제와 봉사) 우선인지 아니면 서로 사귀는 것이 주된 개념인지 헷갈립니다.

 

그러나 나중 행 6:1-2절에서 도와준다는 개념인 디아코니아라는 단어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단 교제, 친교, fellowship, 코이노니아는 서로 사귄다는 의미가 우선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도와 준다는 개념이 빠지는 것도 아닙니다. 어떻게 돕는지는 조금 뒤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어떻게 서로 사귀어야 할까요? 사귐이란 말은 남녀가 데이트한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친교라는 단어를 더 선호합니다. 그리고 사귐과 교제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에는 주 안에서라는 단어를 함께 사용하여 누가 보아도 이성적인 사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러면 모여서 먹고 마시고 즐거운 시간을 가지는 것은 괜찮겠네요?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만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사람들이 즐거운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거룩을 유지하는 것이 더 우선해야 합니다. 성도에게는 세상과 어우러져 놀 수도 있지만 구별된 삶이 필요합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사람들을 초대하고 자연스런 분위기에 와인 한 잔 합니다. 시간이 가면서 서로 더 잘 알게 되고 초대 받은 분도 이제는 다른 분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이번에는 맥주가 나옵니다. 기분 좋을 정도로 마시면 대화도 더 잘되고 분위기도 더 좋아집니다.

 

점점 더 서로 친밀해지는 친교자리에 소주가 나오면 어떻게 될까요? 다양한 측면을 살펴볼 수 있지만 믿는 분과 믿지 않는 양측에 둘 다 덕이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먼저 성도의 그런 행동이 믿음이 약한 성도를 배려하지 못함으로 인해 시험 들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한편, 절제된 성도의 삶이 없으면 예수 안 믿는 사람도 역시 실망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 안 믿는 분들은 대개 성도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집니다. 믿는 사람은 술 안 마시고 모임에 술 안 내오는 것으로 알고 초대에 응합니다. 게다가 성도가 어떻게 모이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안 믿는 분들이 세상에서 놀 줄 몰라 믿는 사람들과 어울리겠습니까? 자신도 세상에서 다 해보고 놀아 보았습니다. 허전하고 허망한 느낌이 들다 보니 예수 믿는 사람들이 초대하는 자리에 기대감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그분들 기분 맞추려고 와인이나 맥주 가져오는 것 자체가 더 실망시킬 수 있습니다.

 

성도에게는 거룩이 필요합니다. 거룩은 나를 지키는 힘도 되지만 타인을 바르게 이끌어 줍니다. 그러므로 거룩은 구별된 삶 그 자체만이 아닌 영향력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믿는 사람 집에 초대된 안 믿는 분이 술 한잔 안 해요?”라고 할 때 대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그때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요. “네 저도 술을 마셨지만 예수를 믿고 난 뒤 술을 끊게 되었습니다. 술 안 마셔도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술이 들어가서 내게 주는 즐거움보다 주님이 내 속에 들어오셔서 위안과 평강을 주는 시간이 더 길게 됨을 알게 된 후부터 술을 끊게 되었습니다.

 

형제님/자매님도 한번 내가 믿는 예수를 꼭 영접해 보시기 바랍니다.이것이 성도의 거룩입니다. 내 삶의 변화가 다른 사람에게 변화를 줄 수 있는 영향력입니다. 이런 성도의 삶이 우리 교회 성도님들의 목장에서도 있을 줄 믿습니다.    이제 남은 과제가 하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 안에서 성도의 사귐이 남을 도와주는 교제가 될 수 있을까요? 본문 42절을 다시 보면 교제 뒤에 이어 나오는 말씀이 답입니다.“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예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목장모임은 불신자들을 식사에 초대하고 예배 시간으로 이어져 기도제목까지 나누도록 이끄시기 바랍니다.   


기도제목을 나누며 함께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도움이 있는 교제입니다. 그래서 한국말 번역은 코이노니아란 단어를 사귐과 도움이라는 두 가지 의미에서 번역했던 것입니다. 밥 먹고 놀러 가고 기분 좋게 하는 사귐도 필요합니다. 사귐은 믿지 않는 분들을 초대하고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함입니다.

 

성도의 사귐은 반드시 도움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진정 한 사람을 돕는 것은 그 사람의 영혼이 평강 가운데 거할 수 있도록 함께 마음으로 위로하고 기도로 주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역사 하기에 교회는 이 일을 힘들어도 지속해 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코이노니아입니다.

 

오늘 예배를 마치고 원월드룸에 내려가 목장별로 식사를 하게 됩니다. 성도간의 아름다운 친교가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 시작될 기혼 목장 모임부터 주안에서 성도간의 더 친밀한 교제와 진정한 도움이 있는 친교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