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1): 배움의 공동체 

2: 42


 

가족수련회를 마치고 차분하게 이제부터 교회에 대해서 공부를 좀 하고자 합니다. 오순절에 임한 성령충만은 공동체로서의 초대교회를 낳게 됩니다. 사도행전이 보여주는 공동체는 오늘날 교회의 본보기가 되는 것입니다. 먼저 이 공동체는 믿음의 고백으로 시작된 신앙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종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을 지배하는 환경과 분위기 때문에 종교생활을 시작하는 종교와는 전혀 다른 집단이었습니다. 믿음의 고백으로 태어난 공동체는 예배, 교육, 전도와 선교, 구제와 봉사, 그리고 친교의 영역을 가지며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 나갔습니다.    

 

오늘은 첫 시간으로 배움의 공동체로서 초대교회 모습을 보고자 합니다. 41절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는 이제 삼천 명이 넘는 공동체를 형성하게 됩니다. 120명에서 삼천 명이라는 수적 성장이 더해갑니다. 이때 가장 시급한 것은 그들에게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은 자신의 고백으로 공동체에 들어 왔지만 어떻게 이 세상에서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 대부분은 예루살렘에 거하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구약의 율법에 익숙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 전통에 익숙했기에 처음에는 새로운 믿음체계가 방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도 이런 모습이 나타납니다. 1:12절을 보면 주님이 승천하신 후에도 그들은 아직 주일 대신 안식일을 준수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아직 논쟁을 일으킬 만한 문제 거리들이 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행3:1에 보면 제 구시 기도하는 시간에 성전으로 향하는 유대적 신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들이 믿고 있는 이 신앙은 전혀 유대교와는 다른 것을 알게 됩니다. 가장 쉽게 하나님에 대한 개념에서부터 다른 것을 발견합니다.

 

유일하신 성부 하나님 외에 성자 예수, 성령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새로운 구원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의 유대교를 알리는 일이 없었는데 이제는 예수에 대해 전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게 됩니다

 

이런 것들은 사실 나중에 문제가 됩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소개하는 이 시간에 가장 급한 것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못박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야였다는(2:36) 사실에 찔림이 있었습니다(2:37). 이 순간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이 자신들이 믿어왔던 유대교와는 정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메시야를 죽인 죄를 깨달았습니다. 이 순간 죄를 용서 받으려면 동물을 잡아 성전에서 제사장을 통해 제사를 드려야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런 행위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아직 로마가 성전을 파괴 시키지도 않았기에 성전은 존재했었고 동물 제사는 드려지고 있었음에도 말입니다.

 

제자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는 말에 그들은 그냥 따라 합니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입니다. 그날 삼천 명이 구원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상 제자들의 말을 따라 하긴 했지만 점점 왜 이렇게 하지라는 의문을 갖기 시작합니다.

 

따라는 했지만 속으로 매우 궁금한 것들이 많았고 질문들이 생겨났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예수를 따르는것인가에 대한 배움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본문에서 초대교회의 특징 중 하나인 사도들이 가르쳐야만 했던 이유와 배경입니다(2:42).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나오지만 무수한 질문들이 있습니다. 나는 왜 구원을 받아야 하는가? 예수는 왜 우리의 죄를 가져갈 수 있는가? 왜 다른 것은 안되고 오직 예수만이 가능한가? 엄청난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내 감정이 동의를 하고() 내 의지로 믿어야 합니다().

 

인간의 지,,의 전체가 동의와 합리적 이해와 감정의 합의가 있어야 됩니다. 전인격적인 구원에 대한 이해와 인정 그리고 확신이 없이는 흔들립니다. 구원의 확신이 서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배움의 시간을 많이 가집니다. 모든 성도는 시간을 내어 반드시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합니다.

 

그 일을 초대교회가 담당했던 사람들이 바로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서는 제자라고 부르지 않고 사도들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예루살렘에 국한되지 않고 먼곳까지 가서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였다는 증거로서 제자라는 단어를 더 이상 사도행전은 사용하지 않게 됩니다.

 

물론 영원한 제자이지만 기능적인 면에서 제자를 마무리 짓고 이제 사명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신앙의 성숙이라 부릅니다. 성도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제자라는 배움의 단계를 넘어 삶의 현장에서 사역을 감당하는 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서 있는 가정에서 주부로서, 직장에서 직장인으로서, 교실에 있는 학생으로, 가르치는 현장에서 교수로 주의 사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을 감당하도록 여러분에게 우리 교회는 삶의 현장 선교사 프로그램을 이제 시작하게 됩니다.

 

2년 반 정도 과정을 학기 별로 한 과목당 12주 정도 5과목을 배우게 됩니다. 그 기간 동안 우리교회가 가는 단기선교나 유티카 난민 사역 현장에 나가 직접 전도하고 선교하는 현장학습을 체험하는 과정도 포함되게 됩니다. 이론으로만 풍성한 사람이 아니라 실제를 겸비한 사역자가 되기 위함입니다.

 

아니 다들 공부하는 봄브레이크나, 한국으로 가는 여름방학에 어떻게 단기 선교를 다녀오고 유티카사역을 할 수 있습니까? 다른 방법이 또 있습니다. 한 학기 동안 교회가 필요로 하는 현장에서 특히 교육현장에서 가르치는 사역을 하면 현장학습이 이수가 됩니다. 다음 주부터 1기가 시작됩니다. 장로님들이 먼저 조인해 주실 것을 바라고 많은 우리 청년부와 성도님들도 4시에 일단 시작부터 하는 복된 성도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